효월의 종언 못다 한 이야기

패치 V6.0 효월의 종언 메인 스토리의 내용 중 일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직 메인 스토리를 완료하지 못한 분께서는 주의 부탁 드립니다.

「언젠가 돌아갈 생명」

“어? 아젬이 놓고 갔네?” 창조물 관리국의 국장실로 돌아온 휘틀로다이우스는 손님용 의자 위에 나뒹굴고 있는 크리스탈을 발견하고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손바닥 크기만 하고 맑은 푸른색으로 빛나는 그것은 아침에 눈 뜨자마자 이곳을 찾은 친구의 것이 틀림없다. 안에 담긴 것은 본인 작 ‘여행을 쾌적하게 만드는 도구의 이데아, 제14탄’이라고 하는데 그 구조에 대해 창조물 관리국장의 입장에서 조언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 전제가 될 여행의 고생담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니 정작 내용물을 자세히 볼 틈도 없이, 아젬은 14인 위원회의 정례회의에 가야만 했다. 휘틀로다이우스도 함께 국장실을 나왔고――오늘은 초대형 생물의 이데아를 전개해서 심사하기로 한 날이었다――볼일을 마치고 이제 막 돌아온 것이다. “후후, 여기다 두고 어떻게 여행을 쾌적하게 만들겠다고…….”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크리스탈을 주워 든다. 그리고 창밖, 14인 위원회가 모이는 대의사당 쪽을 향해 초점을 흐리듯이 에테르를 주시했다. 에테르는 누구나 감지할 수 있고, 경험을 쌓으면 그 흐름을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타고나기를 이만큼 세밀하게 볼 수 있는 사람은 드물어서 휘틀로다이우스 자신을 제외하면 에메트셀크 정도밖에 없었다. 그의 눈은 금방 아젬의 에테르 색을 찾아냈다. 거리가 있기 때문에 상세한 위치는 파악하기 어렵지만 의사당 부지 내에 있는 건 일단 확실해 보인다. 휘틀로다이우스는 물질계로 주의를 되돌렸다. 창밖에서는 살짝 저물기 시작한 태양이 아모로트의 거리를 비추고 있다. 평소라면 정례회의가 끝날 때쯤이니 분실물을 가져다주기에 나쁘지 않은 타이밍이다. 곧바로 국장실을 나와 접수원에게 한마디를 남기고는 밖으로 향한다. 고지식한 서기장이 붙잡는 것 같았지만 이럴 땐 못 들은 척한다. 정면 입구의 문을 여니 웅장한 마을이 시야에 한가득 펼쳐진다. 높은 탑 위로 펼쳐진 하늘에선 햇빛과 바람이 쏟아져 내렸다. 완만한 언덕을 올라 대의사당 앞까지 왔을 때, 낯익은 여성 두 명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안쪽에서 나왔다. 안쪽 상황을 묻기에 이보다 더 좋은 인물들은 없다. “안녕? 미트론과 알로그리프. 회의 끝났어?” “응, 누군가 했네. 조금 전에 폐회했어. ……둘 다 아직 의사당 안에 있을 거야.” 미트론이 그렇게 대답한다. 휘틀로다이우스가 의사당에 온 이유는 확인할 필요도 없는 것 같다. “오늘은 아젬 쪽이야. 뭘 놓고 갔길래.”라고 대답하니 그녀는 웃으며 어깨를 으쓱하고 마카렌세스 광장 쪽으로 걷기 시작한다. 알로그리프도 “이만 갈게”라며 손을 흔들고 그 뒤를 쫓는다. “저기, 미트론. 오늘 어디 간다고 했더라?” “아까 말했잖아……하여간 넌 진짜 잘 까먹는다니까…….” 목소리가 밝아지면서 멀어져 간다. 여가 시간을 평소처럼 둘이 보내는 거겠지. 바다에 사는 생물을 창조하는 미트론과 육지에 사는 생물을 창조하는 알로그리프――맞닿은 영역이 해안에서 어우러지듯이 두 사람은 매우 사이가 좋았다. 그들의 뒷모습을 배웅하고, 휘틀로다이우스는 의사당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광활하게 넓은 입구는 오늘도 티끌 하나 없이 아름답다. 그 안으로, 이번에는 또 다른 두 사람이 심각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중대한 결정이 이루어지는 14인 위원회의 회의에서는 후드와 가면 모두 벗는 것이 관례다. 폐회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듯, 두 사람은 맨얼굴을 드러낸 채 변론을 주고받고 있었다. 아니면 저 두 사람이라면 원래 가릴 필요가 없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사촌 사이니까. 그들――라하브레아와 이게요름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최대한 조용히 앞쪽 문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정적이 흐르는 복도가 쭉 이어져 있었다. 다시 초점을 에테르의 흐름에 맞춰 주위를 둘러보니, 아젬의 색이 이번에는 아주 가깝게 보인다. 아마도 안뜰 근처일 것이다. 이쪽 복도에서 가려면 살짝 돌아가야 하지만 마침 옆에 또 하나 알고 있는 색을 찾았기에 서두를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판단한다. 자연스럽게 미소를 띠며 느린 걸음으로 앞을 향해 걷는다. 조금 더 가니 복도의 한쪽 끝에 본회의장으로 이어지는 문이 보인다. 때마침 묵직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작은 체구의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얀색 로브의 가슴팍에 붉은 가면이 매달려 있다. “안녕, 엘리디부스. 회의 수고했어.” “휘틀로다이우스……? 아젬도 에메트셀크도 조금 전에 여기서 나갔는데…….” ……아무래도 용건을 짐작하고 있는 건 미트론뿐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뭐, 아젬과 에메트셀크가 창조물 관리국을 찾아왔을 때도 직원들이 두말없이 휘틀로다이우스에게 안내해 주었던 것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매번 제대로 용건을 묻는 사람은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신입 직원이거나 아주 고지식한 서기장 정도다. 일단은 찾는 사람의 위치는 알고 있다는 걸 엘리디부스에게 알린 뒤, 그 김에 방금 본 광경에 관해 물어보기로 했다. “오늘은 무슨 어려운 의제라도 있었어? 라하브레아와 이게요름이 심각한 표정으로 연장전을 치르고 있던데.” “아니……문제 자체는 이미 해결됐어. 단지 그 일로 라하브레아가 생각에 잠기거나 자리를 비우기도 해서…… 이게요름이 굉장히 걱정하는 것 같더라고.” “그렇구나, 변론이 아니라 설교였던 거군. 하지만 라하브레아 경이 그 정도로 고민하다니, 실제로는 꽤 큰 사건이었나 봐?” 그러자 엘리디부스가 드물게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명석한 그도 쉬이 표현할 수가 없는 사건이라는 뜻일까.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면서 “분명 위험하고……이해할 수조차 없는 점도 있었지만……”이라며 말을 흐렸다. 하지만 곧이어 스스로 납득이 되었는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든다. “얻은 것도 많은 사건이었어. 나에게도 새로운 친구가 생겼고……. 별을 만났거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신비하고 눈부신 혜성을.” “그건 멋진 추억이네.” “그래, 분명 영원히 잊지 못할 거야.” 엘리디부스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그럼, 갈게.”라며 후드와 가면을 썼다. 잘 가라고 인사하니 그는 완전히 평소와 같은 조정자의 모습으로 입구를 향해 떠났다. 거기에서 조금 더 걸어가 복도의 모퉁이에 이르렀을 때, 휘틀로다이우스가 모퉁이를 돌기 직전 앞쪽에서 검은 물체가 튀어나왔다. 반사적으로 몸을 피해 아슬아슬하게 충돌을 면했다. 튀어나온 물체가 무언가 싶어 쳐다보니 놀라서 크게 뜬 비취색 두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미안, 내가 덤벙대서……!” 그곳에 있는 사람은 최근 파다니엘의 자리에 취임한 남자였다. 휘틀로다이우스에게는 그가 전 직장에 있을 때의 이름――헤르메스라고 부르는 쪽이 아직은 친숙하다. 그 역시 회의가 끝나고 나서도 그대로 있었는지 맨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얼굴이 퀭하고 어쩐지 안색도 생기 없게 느껴졌다. “난 괜찮은데……넌 괜찮아? 왠지 수척해진 것 같은데? 제대로 휴식은 취하고 있어?” “……꼭 조사해 두고 싶은 게 있어서.” 대답은 확실하지 않았지만 어색한 듯이 피하는 시선이 모든 것을 말하고 있었다. 사실 그가 지나칠 만큼 일에 몰두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에메트셀크로부터 들은 바 있었다. 엘피스의 소장을 맡고 있던 무렵에도 자주 그런 식으로 근무했던 모양이라 본인은 아무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단지 어느 정도 ‘평소보다 조금 더’ 노력하고 있다면, 그 계기는 짚이는 데가 있었다. 파다니엘의 자리에 취임하기 직전에 진행된 엘피스 시찰 당시, 그는 사고를 하나 일으킨 적이 있다. 오랜 세월을 들인 연구의 집대성으로 만든 사역마가 폭주한 끝에 소멸……그로 인한 혼란 때문에 휘페르보레아 조물원의 시스템이 오작동을 일으켜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며칠분 기억을 날려버렸다. 주변에서는 웃어넘기는 일화지만, 정작 본인은 사역마를 ‘죽게 했다’며――이런 표현을 쓰는 사람은 자신이 아는 한 그밖에 없다――이후, 그야말로 날개라도 잃어버린 것처럼 비행 생물 창조를 그만두었다. 대신에 파다니엘의 책무, 즉 물질계의 관찰과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모양이다. “하고 싶어서 하는 거라면 괜찮지만, 적어도 식사로 에테르 보충은 하지 그래? 뭐 가져다줄까? 좋아하는 건 있어?” “좋아하는 것………….” 헤르메스는 그저 따라 말한다. 그 눈동자는 희미하게 흔들리며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했다. “……미안, 이제, 잘 모르겠어서.” “아, 매우 피곤한가 보네. 그런데 있지, 나도 먹는 것에 대해선 딱히 취향은 없어. 친구들이 즐거워 보이니 즐거울 뿐이란 말이지, 사실!” 살짝 호들갑스럽게 말하자 덩달아 헤르메스의 불안해 보이는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그때 생긴 약간의 틈에 의문을 던져 보고 싶어졌다. “……그런데 넌 왜 그렇게 필사적이야? 그렇게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으면서까지 이루어야 할 과제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질문을 받은 헤르메스는 입을 다물었다. 또다시 자기 안에서 답을 찾고 있는 듯했다. 그의 내면은, 어쩌면 어두운 바다와 같을지도 모른다. 굉장히 어려운 수색 끝에 그는 툭 하고 내뱉듯이, 하지만 확실하게 중얼거렸다. “나아가야만 하니까.” “……무슨 뜻이야?” “모르겠어……어디로 가고 싶은지……어떻게 되고 싶은지도……. 하지만 살아 있으니……그러니까 어딘가로……앞으로……나아가야만…….” 그의 말은 거의 실없이 들렸다. 어두운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내뱉는 말. 본인조차도 스스로 한 말을 이해하는 것 같지 않다. 물질계를 살펴보는 파다니엘의 자리는, 명계를 지켜보는 에메트셀크의 자리와 대칭적으로 삶을 관장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 역할에 대한 철학 같은 것일까……?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자, 헤르메스는 문득 정신을 차리더니 “미안”이라며 다시 한번 사과했다. “방으로 돌아가 좀 쉴게. 걱정해 줘서 고마워, 휘틀로다이우스.” “응, 그러는 게 좋겠어. 에메트셀크도 ‘그 녀석 그러다 쓰러지겠다’면서 걱정하더라.” 헤르메스는 쓴웃음을 짓더니 인사를 하고 떠났다. 조금 위태로운 걸음걸이를 무심코 지켜보았지만, 그는 몇 번이나 벽에 어깨를 부딪치면서도 어찌저찌 돌아갔다. 다시 복도를 걷는다. 목적지인 안뜰까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확인하듯이 초점을 바꾸었다가 무심코 ‘앗!’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아젬의 색이 그 자리를 떠나 상공으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잰걸음으로 안뜰로 향한다. 아나그노리시스 천측원과 비슷하게 만들어진, 작지만 잘 손질된 정원이다. 복도로 둘러싸여 있고 위쪽은 시원하게 뚫려 있다. 과연, 여기라면 사역마를 타고 날아오를 수 있을 것 같군……. 역시나 주변에 아젬의 모습은 없고 옆에 있던 또 하나의 색――에메트셀크가 서 있을 뿐이었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시선 끝에 무엇이 있는지, 그것이야말로 물어볼 필요도 없다. 언제나 험상궂게 찌푸려져 있는 눈썹은 잔잔한 곡선을 그리고 있고, 입꼬리는 희미하게 올라가 있다. 어딘가 자랑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 표정은―― “……너 말이야, 아젬을 배웅할 때만 꼭 그런 미소를 보이더라?” 다가가며 말을 걸자 에메트셀크는 진심으로 싫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돌아본다. 아깝게도 귀한 미소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안 그래? 늘 찡그린 얼굴인데 어쩌다 보이는 미소는 비쭉거릴 때랑 비웃을 때, 딱 두 경우뿐이니까.” “넌 시비 걸려고 굳이 여기까지 온 거냐……?” 에메트셀크의 미간의 주름이 한층 짙고 깊어진다. 개의치 않고 옆에 서서 그가 보고 있던 하늘을 바라보았다. 멀리 작게 보이는 아젬의 모습이 이내 점이 되어 사라진다. 그 모습을 배웅하고 나서 가만히 에메트셀크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뭐, 어때, 난 좋아해. 너의 그 미소.” “놀리지 마. 나는 딱히……기껏해야 도발하고 있을 뿐이야. 엉뚱한 목적으로 떠나는 저 녀석에게, 해볼 테면 한번 해봐라, 그러는 거라고.” “응응, 그리고?” 에메트셀크가 섬뜩할 정도로 노려보았지만, 그렇다고 기죽을 휘틀로다이우스가 아니다. 둘 다 흔치 않은 눈을 지닌 터라 어렸을 때부터 늘 붙어 다녔던 제일 친한 친구이니 말이다. 아마 에메트셀크도 그가 진심으로 놀릴 생각이 없다는 것 정도는 알 것이다. 그의 자존심과 좋은 성격이 적절히 균형이 맞기를 기다리면 대답해 줄 거라 확신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때가 찾아왔다. “……저 녀석이라면 무슨 일이든 다 해낼 수 있을 거야. 앞으로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 생각하면 기분이 좀 좋아져.” 이번에는 휘틀로다이우스가 소리 높여 웃을 차례였다. 그는 한번 터지면 좀처럼 웃음을 멈추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웃음 사이에 간신히 “알 것 같아!” 하고 맞장구를 치니 에메트셀크가 질렸다는 듯이 한숨을 쉰다. 그 한숨도, 계속되는 잔소리도 모두, 아젬이 날아간 푸른 하늘에 빨려 들어가 사라져 버렸다――

그 푸른 하늘도 이제는 사라진 것이 되었다. 각지에서 시작된 종말의 재해는 결국에는 아모로트마저 집어삼키고, 하늘은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돌아보니 숨을 헐떡이는 에메트셀크가 서 있었다. “대체 왜……넌 살아남아야 하잖아……! 남아서, 별의 재생을 위해 국장으로서 임무를 다하라고……!” “우리 직원들은 모두 우수해. 몇 명이 남기로 했으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어.” 에메트셀크의 말에 숨어 있는 소망을 눈치채지 못한 척하며 그렇게 대답했다. ‘별의 의지’를 창조해 종말을 막는다. 이를 위해 목숨을 바칠 자를 모집한 건 다름 아닌 14인 위원회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더 이상 부정할 수도 없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사실 싸울 힘이 부족한 휘틀로다이우스는 제물이 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다. 에테르로 돌아가는 것도, 그것이 창조 마법의 양식이 되는 것도 무섭지는 않다. 죽음의 공포를 이해한 지금이기에, 과거처럼 별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건 수많은 자들을 위한 구원이라고도 생각되었다. 그런데도 친구의 초췌한 모습은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 원인이 자기 말고도 더 있다는 것을 휘틀로다이우스는 잘 알고 있었다. “……아젬은 너희를 저버린 게 아냐. 늘 그랬듯 자기가 진심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찾아서 지금도 저항하고 있을 거야.” “그 바보 녀석의 생각 따위 알 게 뭐야……! 지금 필요한 건 확실한 방법이다. 우리에게는 이 별을 지킬 책임이 있어!” 아젬이 가져올 미래를 누구보다도 기대하고 있었을 그가 외치듯이 내뱉는다. 그것이 얼마나 괴롭고 아픈 일인지 모를 리가 없다. 그렇다 해도 ‘에메트셀크’로 계속 존재하는 그는 역시 성실하고 성격 좋은, 자랑스러운 친구이다. “넌 옳아, 에메트셀크. 그래서 난 14인 위원회의 대책에 거는 거야.” 조디아크 소환의 때가 다가오고 있다. 휘틀로다이우스는 평소와 다름없이 ‘미안해’라고 말하고는 친구에게 등을 돌리고 걷기 시작했다. 걸어가며,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그의 미소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걸로 끝. ――끝이어야 했다. 기구한 운명, 혹은 베네스의 집념에 의해 하늘 끝으로 인도된다. 에메트셀크와 휘틀로다이우스, 그리고 아젬의 혼을 잇는 자……셋의 혼이 드디어 재회하는 순간이었다. 종언을 노래하는 자에게 사람의 대답을 알려주고, 우주 영역에 가득한 마음에 창조 마법으로 형태를 부여한다. 그렇게 소임을 다한 뒤, 에메트셀크는 작별 인사 대신 과제를 남겼다. “……난 봤거든.” 오만하게 말하고 자리를 뜰 때, 그는 분명히 웃고 있었다. 어딘가 자랑하듯이. 도발하듯이. 기대를 담아. 이루어질 것이라 믿으며. ――그것은 틀림없이 아젬을 배웅할 때 보였던 그 미소였다. 그런 ‘앙코르’도 끝을 맞이하고, 죽은 자들은 그들이 마땅히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간다. 하얀 나룻배가 만드는 파도를 따라, 생명이 흐르는 명계로. 부드러운 흐름에 이번에야말로 몸을 맡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드디어, 일까. 아득히 빛나는 수면, 그 너머에 환성이 들린다. 어서 와――어서 와――겹쳐 울리는 말소리들이 승리와 귀환을 고하고 있다. 곁의 에메트셀크는 눈을 감고 먼 웅성거림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 얼굴에 떠오른 변함없는 미소는, 분명 과거와 미래를 배웅하고 있다. 조디아크를 창조한 후에도 그에게는 셀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어려움이 있었으리라. 먼 옛날, 인간이 처음 맛본 슬픔과 괴로움, 공포와 외로움에 번번이 시달렸을 것이다. 그 끝에 찾아온 마지막 순간의 잠이 이렇게 미소와 함께하는 것을, 이 모든 것에――‘너’에게 감사하고 싶다. 언젠가처럼 나란히 그가 바라보고 있던 수면을 올려다본다. 그리고 한 번만 더 옆의 미소를 돌아보며 위로의 말을 건네고 눈을 감는다. 별이여, 지금 옛사람의 생명이 돌아간다. 우리는 그대였고, 그대는 우리였다. 이 육신을, 혼을, 기억을 엮고 있던 것을 흐름에 실어 언젠가 다시 물가로 옮겨다오. 그날을 생각하니 마음이 들떴다. ――하데스, 너도 그렇지? 생명의 바다에 녹아간다. 감은 눈 뒤로, 마지막 환상을 그리며.